중세 아랍의 과학자들 카말 알딘 알파리시: 무지개 설명으로 보는 모델 경쟁

중세 아랍의 과학자 카말 알딘 알파리시는 무지개를 두 번의 굴절과 물방울 내부 반사로 설명하고, 유리구·카메라 옵스큐라 실험으로 검증했습니다. 여러 모델이 경쟁하며 과학이 단단해지는 과정을 한 편으로 읽기 쉽게 정리합니다.


무지개는 “보이는 현상”인데, 왜 설명은 계속 바뀌었을까

무지개는 늘 거기 있습니다. 비가 그친 뒤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면, 누구나 같은 색 띠를 봅니다.
그런데 과학에서 중요한 질문은 “봤다”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 왜 항상 둥근 호(arc)로 보일까?
  • 왜 색의 순서가 일정할까?
  • 왜 어떤 날은 ‘겹무지개(이중 무지개)’가 생기고 색 순서가 뒤집힐까?
  • 왜 관측자 위치가 바뀌면 무지개 위치도 같이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 질문들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모델(설명 틀)**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모델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가설이 경쟁하고, 그 경쟁 속에서 더 좋은 설명이 살아남습니다.
이 글은 그 경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 **중세 아랍의 과학자 카말 알딘 알파리시(Kamāl al-Dīn al-Fārisī)**를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카말 알딘 알파리시 대략 연대기: ‘광학’이 실험과 수학으로 좁혀지던 시기

알파리시는 단독 천재라기보다, 이미 강력한 광학 전통 위에서 “설명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진한 인물입니다.

  • 출생: 1260년대 전후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고, 1267–1319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 학문적 연결: 쿠트브 알딘 알시라지(Qutb al-Din al-Shirazi)와의 사제 관계가 자주 언급됩니다.
  • 핵심 작업: 이븐 알하이탐의 『광학서』 전통을 깊게 연구하고, 사실상 “개정/수정(Revision)” 성격의 저술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진 『탄키흐 알-마나지르(Tanqih al-Manazir)』
  • 대표 성과: 무지개를 물방울 내부에서의 굴절과 반사로 설명하고, 실험적 검토를 강조한 설명을 남긴 인물로 평가됩니다.

연대기의 핵심은 ‘몇 년’이 아니라 시대 분위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그럴듯한 설명”보다 수학적으로 더 깔끔하고, 실험적으로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 살아남기 시작했습니다.


‘모델 경쟁’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한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델 경쟁을 간단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1.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이 나온다
  2. 각 가설은 “어느 부분은 잘 맞고, 어느 부분은 약하다”
  3. 더 많은 관찰을 견디는 쪽이 남고, 약한 쪽은 수정되거나 탈락한다
  4. 남은 모델도 “완성”이 아니라, 더 정확한 모델로 계속 업데이트된다

무지개는 모델 경쟁이 특히 잘 보이는 주제입니다.
색, 각도, 이중 무지개, 관측자 위치 등 설명해야 할 항목이 많아서 대충 맞추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알파리시 이전의 무지개 설명: 왜 “설명력”이 부족했나

초기 설명들은 종종 다음 중 하나로 기울었습니다.

  • 색을 ‘성질’로만 말하고, 경로(광선) 계산이 약함
  • “반사”만 강조하거나, “굴절”만 강조해 이중 무지개 같은 현상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함
  • 관측자 위치가 바뀌면 무지개도 따라 움직이는 듯한 성질(기하학적 조건)을 정교하게 묶지 못함

여기서 알파리시(그리고 서양의 테오도릭 등)가 보여준 변화는, 무지개를 **“빛이 물방울 안에서 어떤 경로를 밟는가”**로 바꿔 잡았다는 점입니다.


알파리시의 핵심 모델: “두 번 굴절 + 내부 반사”

알파리시의 무지개 설명은 오늘날 교과서적 설명과 닮은 골격을 가집니다.

1차 무지개(주무지개)의 기본 경로

  • 햇빛이 물방울에 들어오며 굴절(1차 굴절)
  • 물방울 안쪽에서 한 번 반사(내부 반사)
  • 다시 밖으로 나가며 굴절(2차 굴절)

이 경로를 통해 특정 각도 범위에서 빛이 강하게 모여 보이고, 그 결과 관측자는 색 띠를 보게 된다는 식입니다.

2차 무지개(겹무지개)의 기본 경로

  • 내부 반사가 두 번 일어나면,
  • 색의 순서가 뒤집힌 보조 무지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맞았다/틀렸다”가 아니라, 이 모델이 더 많은 현상을 한꺼번에 묶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설명력’입니다.


알파리시가 강했던 이유: 작은 물방울을 ‘큰 물방울’로 바꿔 실험했다

무지개는 공기 중 작은 물방울에서 생깁니다. 하지만 중세에는 작은 물방울 내부에서 빛이 어떻게 꺾이고 반사되는지 직접 보기 어렵습니다.
알파리시가 선택한 전략은 간단하면서도 과학적입니다.

  • 작은 물방울을 그대로 보려 하지 말고,
  • **큰 물방울(거대한 물방울 모델)**을 만들어 빛의 경로를 관찰한다.

실제로 그는 물이 든 유리 용기/유리구 같은 장치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활용해 빛의 진행을 통제하며 관찰했다는 설명이 교육 자료에서도 소개됩니다.

이 접근이 대단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 **스케일 업(확대)**로 관찰 가능성을 만든다
  2. “그럴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재현 가능한 장면을 만든다

즉, 모델은 머리속에서만 경쟁하는 게 아니라, 실험 장면에서 경쟁하게 됩니다.


‘모델 경쟁’이 과학을 단단하게 만드는 4가지 장치

알파리시 사례를 통해 모델 경쟁이 어떻게 지식을 강화하는지, 구조로 정리해보면 명확해집니다.

1) 경쟁은 질문을 늘린다

한 모델이 현상을 모두 설명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질문을 추가합니다.
무지개는 질문이 계속 늘어나는 주제였고, 그 덕분에 설명은 점점 정교해졌습니다.

2) 경쟁은 용어를 ‘검증 가능한 말’로 바꾼다

“빛이 이렇게 된다”가 아니라
“빛이 굴절하고, 내부에서 반사하고, 다시 굴절한다”처럼
검증 가능한 동사로 바뀝니다.

3) 경쟁은 ‘반례’를 환영하게 만든다

모델을 지키려면 반례를 숨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경쟁이 생기면, 반례는 공격 도구가 아니라 모델을 개선하는 연료가 됩니다. (겹무지개, 색 반전 같은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4) 경쟁은 “수학적으로 더 깔끔한 설명”을 요구한다

알파리시는 ‘더 수학적으로 만족스러운’ 무지개 설명을 준 인물로 종종 언급됩니다.
이 말의 뜻은 간단합니다.
설명이 길어지는 게 아니라, 조건과 경로가 정리되어 예측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간다는 겁니다.


알파리시의 작업이 남긴 문서적 의미: ‘주석’이 아니라 ‘리비전(개정판)’

알파리시는 이븐 알하이탐 전통을 단순히 “존경”한 것이 아니라, 깊게 연구해 수정·정교화하는 방식으로 이어갔다고 소개됩니다. 그 결과물이 **『탄키흐 알-마나지르』(광학의 개정/수정)**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책 한 권 더 썼다”가 아닙니다.

  • 기존 텍스트를 읽는다
  • 약한 부분을 찾아낸다
  • 더 나은 설명(실험/기하)을 붙인다
  • 다음 사람이 다시 수정할 수 있게 정리한다

이런 방식이 누적될 때, 학문은 “권위”가 아니라 업데이트 가능한 시스템이 됩니다. 이것이 중세 아랍의 과학자 전통을 오늘날에도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오늘의 관점으로 번역: 모델 경쟁은 ‘버전 비교’다

현대 연구(과학, 데이터, 개발)에서도 똑같습니다.

  • A 모델은 단순하고 빠르지만, 일부 케이스에서 틀린다
  • B 모델은 복잡하지만 더 많은 케이스를 설명한다
  • C 모델은 B보다 단순하면서도 정확도를 유지한다

무지개 설명의 역사도 사실 이런 “버전 비교”의 연속입니다.
알파리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가 버전 비교의 기준을 설명력 + 실험 가능성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3가지

Q1. 알파리시가 무지개를 ‘최초로’ 완전히 설명했나요?

‘최초’라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다만 그는 무지개를 굴절과 내부 반사의 경로로 설명하고, 이를 더 수학적으로 정리한 인물로 널리 언급됩니다.

Q2. 왜 유리구/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실험이 의미 있나요?

작은 물방울 내부는 직접 관찰이 어렵습니다. 이를 큰 모델로 바꿔 관찰 조건을 통제하면, “그럴듯함”이 아니라 검증 장면이 생깁니다.

Q3. ‘모델 경쟁’이 과학에 왜 좋은가요?

모델이 경쟁하면, 반례가 숨겨지지 않고 드러납니다. 그리고 더 많은 현상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쪽이 살아남으며, 남은 모델도 다시 개선됩니다. 무지개는 그 과정이 특히 잘 보이는 사례입니다.


무지개는 ‘정답’이 아니라 ‘설명력 경쟁’이 만든 승리다

카말 알딘 알파리시를 통해 보는 결론은 명확합니다.

  • 과학은 “새로운 말”보다 더 많은 현상을 묶는 모델로 전진하고
  • 모델은 “권위”보다 실험과 기하학적 조건으로 평가되며
  • 그 경쟁이 쌓일수록 설명은 더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알파리시는 무지개를 “예쁘게 설명한 사람”이 아니라, 중세 아랍의 과학자 전통 속에서 **모델 경쟁의 규칙(설명력·검증·수정 가능성)**을 보여준 인물로 읽힙니다.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 알자자리: ‘기계 장치 설명서’가 남긴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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