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아랍의 과학자들 아부 알바라카트: 운동 개념이 바뀌는 ‘중간 단계’

중세 아랍의 과학자 아부 알바라카트는 아리스토텔레스 운동관을 그대로 믿지 않고, 낙하 가속·충격의 누적·상대운동을 논증으로 다듬었습니다. ‘완성’이 아닌 ‘전환의 중간 단계’가 왜 중요했는지 정리합니다. 아마도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발견 이전에 해당 지식들이 좀더 완성 되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부 알바라카트 의 물리법칙의 세계를 지금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들어가며: “운동”은 눈앞에 보이는데, 설명은 왜 자꾸 흔들릴까

돌을 던지면 날아가고, 수레를 밀면 굴러가고, 높은 곳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면 더 빨라지듯 보입니다.
운동은 누구나 매일 경험하지만, 그 경험을 하나의 규칙으로 묶는 순간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 왜 떨어지는 물체는 점점 빨라지는가?
  • 힘을 계속 주지 않아도 왜 한동안은 계속 움직이는가?
  • 같은 상황을 보는 두 사람의 “운동”은 항상 같은가?
  • “시간”은 운동의 측정값일 뿐인가, 아니면 별도의 기준인가?

이 글의 주인공인 **중세 아랍의 과학자 아부 알바라카트(Abu’l-Barakāt al-Baghdādī, 이븐 말카)**는, 이런 질문을 “감”이 아니라 사유 실험과 논증으로 밀어붙인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운동은 이렇게 된다”를 선언하기보다, 기존 설명이 어디서 흔들리는지를 먼저 잡아내며 ‘중간 단계’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아부 알바라카트 대략 연대기: 무엇을 언제 ‘의심’했는지가 보이는 흐름

중세 인물의 연도는 문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큰 흐름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출생: 대략 11세기 후반~12세기 초, c. 1080년 전후로 소개됨(메소포타미아 지역, 바그다드 활동)
  • 활동 무대: 바그다드 중심의 학문·의학 환경(철학자이자 의사로도 유명)
  • 주요 저술: 『키타브 알-무타바르(Kitāb al-Muʿtabar)』—자연철학(운동·시간 등)을 포함해 기존 철학을 비판적으로 재구성
  • 사망: 1164~1165년 전후로 흔히 정리됨

연대기의 핵심은 “언제 태어났나”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가 고대(아리스토텔레스) 설명이 여전히 강하지만, 동시에 설명의 균열이 커지던 때였다는 점입니다. 바로 그 균열에서 “운동 개념의 중간 단계”가 시작됩니다.


왜 ‘중간 단계’가 중요한가: 과학은 도약보다 “수정 가능한 문장”에서 자란다

사람들은 과학을 “정답 발표”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1. 기존 설명이 어떤 현상을 덜 설명한다
  2. 그 부족함이 오차·모순·예외로 드러난다
  3. 누군가 그 모순을 논증으로 분해한다
  4. 더 나은 규칙(혹은 가정)을 붙여 수정 가능하게 만든다

아부 알바라카트의 가치는 3)과 4)에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체계를 완성하기보다, 기존 체계의 약한 연결고리를 드러내어 **“이 부분은 이렇게 고쳐야 한다”**라는 형태로 지식을 전진시켰습니다.


운동관의 핵심 전환 1: “힘은 속도가 아니라 가속과 더 가깝다”는 감각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에서 흔한 직관은 이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 힘을 주면 움직이고
  • 힘이 더 크면 더 빨리 움직인다(속도 중심)

그런데 낙하 운동을 보면 이상해집니다.
손을 놓는 순간에는 천천히 떨어지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빨라집니다. 이 현상을 단순히 “무거워서”로만 설명하면, 다른 조건에서 생기는 차이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아부 알바라카트는 낙하에서 나타나는 “점점 빨라짐”을 중요한 단서로 삼았고, 이후 중세 후기에 그가 낙하 가속을 ‘추진력(impetus)의 증가’처럼 설명한 맥락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현대 물리학을 이미 알았다”가 아닙니다.
포인트는 운동을 속도만으로 붙잡는 설명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논증으로 끌어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중간 단계’의 힘입니다.


운동관의 핵심 전환 2: “충격/추진의 잔여”라는 아이디어로 연속 운동을 설명하려다

던진 돌은 손에서 떨어진 뒤에도 한동안 날아갑니다.
그런데 “접촉이 끊겼는데 왜 계속 움직일까?”는 오래된 난제였습니다.

아부 알바라카트는 ‘운동을 일으킨 쪽’이 대상에 어떤 기울어짐(violent inclination, mayl qasri) 같은 것을 남겨두고, 저항(공기 등)이 그것을 줄여간다는 방식으로 운동을 설명하는 방향을 발전시켰다고 소개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당시로선 매우 실용적입니다.

  • 접촉이 끊겨도 운동이 이어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 저항이 크면 더 빨리 멈춘다는 관찰과도 잘 맞고
  • “진공이라면 더 오래 간다” 같은 반례 상상도 가능해집니다

즉, 설명이 **검증 가능한 형태(저항/조건 변화에 따른 결과 변화)**로 바뀝니다.


아부 알바라카트식 사유 실험 1: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왜 끝에서 더 빨라 보이나?”

그가 남긴 논증을 현대적으로 풀어 쓰면, 이런 방식이 됩니다.

  1. 같은 물체를 떨어뜨린다
  2. 낙하 초기보다 후반이 더 빠르게 보인다
  3. 그렇다면 “힘이 일정해도” 운동 상태가 바뀌는 구조가 있다
  4. 이 변화를 설명하려면, 운동을 속도 하나로만 보는 틀은 부족하다

이 사유 실험의 장점은 간단합니다.
실험 장치가 없어도 관찰 가능한 현상을 출발점으로 삼되, 결론은 “느낌”이 아니라 설명 틀의 수정 요구로 귀결됩니다.


아부 알바라카트식 사유 실험 2: “두 물체의 위치가 바뀌면, 운동은 누구의 것인가?”

아부 알바라카트는 운동을 논할 때 **상대성(상대 위치 변화)**을 언급한 것으로도 소개됩니다. “운동은 물체들 사이의 상대적 위치가 변할 때 성립한다”는 식의 관점이죠.

이 관점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지/운동”이 절대 라벨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 관측자(기준)가 달라지면 설명도 달라질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 그러면 ‘더 좋은 설명’은 관측 기준을 명시하는 설명이 된다

즉, 설명의 품질이 올라갑니다.
과학은 종종 “정답”보다 “조건을 명확히 말하는 문장”에서 강해집니다.


운동관의 핵심 전환 3: ‘시간’의 정의를 건드리면, 운동 설명도 달라진다

아부 알바라카트는 운동뿐 아니라 시간 개념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적 정의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왜 이게 운동과 연결될까요?

  • 시간 = 운동의 척도(운동이 먼저, 시간이 나중)라고 보면
    → 운동이 애매해지면 시간도 흔들립니다
  • 시간에 독립적 성격을 주면
    → 운동을 더 안정적으로 비교할 기준이 생깁니다

이런 “정의의 재배치”는 결과적으로 운동 논증을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정의를 바꾸는 건 말장난이 아니라, 무엇을 기준으로 비교할지를 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중세 아랍의 과학자’ 관점에서 본 알바라카트의 강점

아부 알바라카트를 단지 “철학자”로만 읽으면 아쉬운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방식이 매우 과학적이기 때문입니다.

1) 관찰에서 시작해, 설명 틀을 공격한다

“내가 보기엔 그래”가 아니라
“이 현상은 기존 틀로 설명이 약하다”로 갑니다.

2) 사유 실험으로 반례를 만든다

실험 도구가 부족해도, 조건을 바꿨을 때의 결과를 상상해 논증을 촘촘히 만듭니다.

3) 용어(힘·운동·시간)의 정의를 고정하려 한다

정의가 흔들리면 논쟁이 끝나지 않으니, 정의를 먼저 손봅니다.

이런 태도는 “자연과학자”라는 좁은 의미를 넘어, 지식을 더 검증 가능하게 만드는 넓은 의미의 중세 아랍의 과학자 전통으로 읽을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오늘날 읽는 포인트: “모델이 바뀌는 순간”은 갑자기 오지 않는다

알바라카트를 통해 얻는 가장 실용적인 교훈은 이것입니다.

  • 혁명은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다
  • 기존 설명의 약점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 그 약점을 ‘수정 가능한 문장’으로 바꾸는 사람이 쌓일 때
  • 큰 전환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중간 단계’는 결코 하위 단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 단계가 서 있을 바닥을 깔아주는 단계입니다.


자주 생기는 오해 3가지

오해 1) 알바라카트가 “현대 역학”을 이미 만든 건가요?

아닙니다. 그의 가치는 현대 이론을 선점했다기보다, 기존 이론의 설명력이 약한 지점을 논증으로 드러내고 수정 방향을 제시한 데 있습니다.

오해 2) 사유 실험은 그냥 상상 아닌가요?

상상도 규칙이 있습니다. 조건을 명시하고, 그 조건에서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하는지를 논증으로 연결하면 사유 실험은 검증을 촉진하는 도구가 됩니다.

오해 3) 왜 이런 논의가 중세에 중요했나요?

운동·시간·관측은 달력, 천문표, 기도 시간, 항해·측량 등 실무와 연결됩니다. 설명이 조금만 흔들려도 사회 운영 비용이 커집니다. 그래서 이 논증은 “철학 토론”만이 아니라 지식의 신뢰를 세우는 기반이었습니다.


“중간 단계”는 과학이 성숙하는 방식 그 자체다

아부 알바라카트는 운동 개념을 완성한 사람이 아니라, 운동 개념이 바뀔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에 가깝습니다.

  • 낙하 가속을 설명하는 방식의 균열을 드러내고
  • 접촉 없는 연속 운동을 ‘잔여/저항’ 논리로 붙잡으려 했으며
  • 운동과 시간의 정의를 재검토해 논증의 기준을 세우려 했습니다

이런 작업이 쌓일 때, 과학은 “한 번의 발견”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개선의 문화로 성장합니다.
그래서 그는 운동 개념이 바뀌는 ‘중간 단계’를 대표하는 중세 아랍의 과학자로 충분히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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