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아랍의 과학자 이븐 알샤티르는 ‘새 발견’보다 기존 천문 모델을 관측 기준에 맞게 다듬었습니다. 오차·규칙·검증의 개선이 과학이 되는 이유를 정리합니다. 천문학자 중 첫 발견을 기준으로만 많이 들 기억하지만 그 뒤에는 이븐 알샤티르 처럼 기존의 데이터를 계속 가공하고 오차를 줄이는 작업이 있었기에, 위대한 우주로의 여행이 시작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들어가며: 과학은 “완전히 새로움”만으로 커지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사를 떠올릴 때 종종 “혁명”을 먼저 생각합니다. 새로운 이론이 이전 이론을 한 번에 뒤집는 장면 말이죠.
하지만 실제 연구 현장에서 더 자주 일어나는 일은 **“조금씩 더 맞추는 작업”**입니다.
- 관측과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내고
- 그 어긋남(오차)을 줄이는 규칙을 만들고
- 같은 조건에서 반복해도 결과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것
이 과정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큰 도약이 가능해집니다.
중세 아랍의 과학자 이븐 알샤티르(Ibn al-Shatir)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새로운 우주관”을 외친 인물이라기보다, 기존의 천문 모델을 ‘더 잘 맞게’ 만드는 데 집중한 모델러였기 때문입니다.
이븐 알샤티르 대략 연대기
연도는 문헌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알려진 편이지만, 여기서는 “모델 개선의 흐름”이 보이도록 핵심만 뽑아 정리합니다.
- 1304년: 다마스쿠스 출생
- 직업/역할: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Umayyad Mosque)에서 **무와뀟(muwaqqit, 시간 담당자)**로 활동
- 1371/72년: 모스크의 미나렛을 위한 해시계(sundial) 제작이 기록됨
- 주요 저술: 행성 이론을 교정하는 천문서(‘Nihāyat al-suʾāl fī taṣḥīḥ al-uṣūl’로 알려짐)
- 1375년: 사망
이 연대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언제 무엇을 했다”보다, 그가 시간(기도 시간)·관측·계산의 실무 현장 한가운데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 환경이 “모델 개선”을 과학적 과제로 만들었습니다.
왜 ‘무와뀟(시간 담당자)’이 모델 개선과 연결될까
무와뀟은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다음을 매일 반복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 태양·그림자·계절 변화의 관측
- 관측값을 기도 시간 규칙과 맞추는 계산
- 하루가 아니라 수년 단위로 누적되는 오차 관리
- 사람들이 실제로 쓰는 시간표로 만드는 표준화
즉, 무와뀟의 일은 “좋아 보이는 이론”보다 현장에서 틀리지 않는 규칙을 요구합니다. 이런 업무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바뀝니다.
이 모델은 ‘설명’은 되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맞는가?
맞지 않는다면,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이 질문이 바로 “모델 개선이 과학인 이유”의 출발점입니다.
‘모델 개선’이 과학이 되는 조건 1: 오차를 “느낌”이 아니라 “패턴”으로 본다
모델이 틀릴 때 가장 쉬운 반응은 “관측이 잘못됐겠지”입니다.
하지만 개선이 시작되는 순간은, 오차를 핑계로 넘기지 않고 오차의 모양을 기록할 때입니다.
- 특정 계절에만 반복되는 오차인가?
- 특정 행성에서만 나타나는 오차인가?
- 특정 각도 범위에서만 튀는가?
- 시간이 지나며 누적되는가, 아니면 랜덤한가?
오차를 패턴으로 보면, 수정의 방향도 좁혀집니다.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이 강했던 지점은 “관측이 중요하다”를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관측 기준을 올리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입니다.
‘모델 개선’이 과학이 되는 조건 2: 문제를 ‘고칠 수 있는 단위’로 분해한다
천문 모델은 보통 복합 구조입니다. (원, 주전원, 이심, 균시점 등 여러 장치가 섞입니다.)
이때 개선이 가능한 사람은 문제를 이렇게 자릅니다.
- “태양 모델이 전체적으로 틀리다”가 아니라
→ “이 장치 때문에 각속도 가정이 무너진다” - “달이 이상하다”가 아니라
→ “거리 변화가 과장되어 관측과 어긋난다” - “행성 예측이 흔들린다”가 아니라
→ “이 구간에서만 잔차가 커지는 구조적 원인이 있다”
이 분해가 가능해야, 수정은 감이 아니라 설계가 됩니다.
‘모델 개선’이 과학이 되는 조건 3: “정확도”와 “물리적/기하학적 일관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이븐 알샤티르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전통적 체계(프톨레마이오스 모델)에서 논쟁적이던 장치(예: 균시점/equant 등)를 그대로 두기보다, 기하학적으로 더 일관된 방식으로 모델을 구성하려는 시도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기존을 부정했다”가 아닙니다.
그는 대체로 이런 기준을 동시에 세웁니다.
- 관측과의 적합성(예측이 맞아야 함)
- 모델 내부 규칙의 일관성(같은 전제에서 같은 방식으로 움직여야 함)
이 두 기준이 함께 갈 때, 개선은 ‘취향’이 아니라 과학이 됩니다.
이븐 알샤티르식 개선의 핵심: “대체 장치”로 오차를 줄이는 설계
이븐 알샤티르의 작업은 한마디로 **“기존 장치를 그대로 믿지 않고, 더 잘 맞는 기하학적 구성으로 대체한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그의 저술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쓰이던 요소를 다른 구성으로 처리해 모델의 정확성과 정합성을 높이려는 방향으로 소개됩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몇 개의 원을 더 썼다/덜 썼다”가 아닙니다.
포인트는 다음 두 가지입니다.
- 오차를 설명으로 덮지 않는다: 오차가 있으면 구조를 바꾼다
- 바꾼 구조가 다시 계산 가능한 형태여야 한다: 모델은 표(테이블)로 내려가야 한다
모델 개선이 실제로 ‘연구 생산성’을 올리는 방식
모델을 조금만 더 맞추면 뭐가 달라질까요? 의외로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1) 예측의 신뢰가 올라가면, ‘표준’이 된다
천문 모델은 결국 표(천문표)로 쓰입니다. 표가 표준이 되면, 후대는 “처음부터 다시”가 아니라 개선된 표를 기반으로 더 개선할 수 있습니다.
2) 오류가 줄어들면, 논쟁이 줄어든다
예측이 자주 틀리면 논쟁은 감정 싸움이 됩니다.
반대로 예측이 안정되면 논쟁은 “어디가 더 낫냐”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더 낫냐”로 이동합니다. 이때부터 논쟁은 학문을 강화합니다.
3) 개선은 ‘복제 가능한 지식’을 만든다
한 번의 천재적 통찰은 따라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어긋나서 이렇게 바꿨다”는 개선 기록은 따라 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 커지는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
코페르니쿠스와의 유사성 논의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이븐 알샤티르의 일부 모델 구성은 후대 코페르니쿠스의 수학적 구성과 유사성이 논의되어 왔습니다. 다만 이것은 “직접 영향이 확정”이라기보다, 연구자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아 논의하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이 글에서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누구에게 영향을 줬느냐보다,
‘모델을 개선하는 방식’이 이미 고도로 발전해 있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즉, 중세 아랍의 과학자 전통의 강점은 ‘새 이론’만이 아니라, 모델링과 개선의 기술에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관점에서 보는 ‘모델 개선’의 5단계 루틴
이븐 알샤티르의 정신을 현대 연구 습관으로 번역하면, 다음 루틴이 가장 가깝습니다.
1) 기준을 고정한다
무엇을 “맞는다”고 할지부터 정합니다(관측 기준, 허용 오차, 비교 구간).
2) 잔차(오차)를 기록한다
틀린 걸 인정하고, 어디서 어떻게 틀리는지 로그를 남깁니다.
3) 원인을 구조로 추적한다
데이터 탓인지, 장치(가정) 탓인지, 계산/단위 탓인지 분리합니다.
4) 대체 구성으로 수정한다
기존 장치에 집착하지 않고, 더 일관된 구성으로 바꿉니다.
5) 재검증하고 표준화한다
재현 가능한 형태(표, 규칙, 절차)로 고정해 다음 사람이 이어받게 합니다.
이 루틴 자체가 “모델 개선이 과학인 이유”를 가장 잘 보여줍니다.
자주 생기는 오해 3가지
오해 1) 개선은 ‘새로움’이 없으니 과학이 아닌가요?
개선은 새로움이 아니라 정확도·일관성·재현성을 증가시키는 과학의 핵심 공정입니다. 특히 모델 기반 학문에서 개선은 곧 연구의 본체입니다.
오해 2) 모델은 결국 가정 덩어리라 믿을 수 없지 않나요?
그래서 더더욱 개선이 중요합니다. 가정 덩어리인 만큼 오차를 관리하고, 가정을 교체하고, 검증 규칙을 강화해야 신뢰가 생깁니다.
오해 3) 이븐 알샤티르는 ‘천문학자’일 뿐 과학자 범주가 좁지 않나요?
그의 작업은 관측·계산·기기·시간 관리까지 연결된 실무형 모델링입니다. “지식을 작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중세 아랍의 과학자 흐름을 대표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과학은 ‘정답’이 아니라 ‘오차를 줄이는 문화’로 자란다
이븐 알샤티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과학이란 완전히 새로움만이 아니라,
기존 모델을 더 잘 맞게 고치고 검증하는 과정이다.
- 오차를 패턴으로 보고
- 문제를 고칠 단위로 분해하고
- 일관성과 정확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며
- 개선을 표준으로 고정해 다음 세대가 이어받게 만드는 것
이 과정이 누적될 때, 학문은 진짜로 단단해집니다.
그래서 이븐 알샤티르는 ‘혁명가’가 아니라,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이 보여준 “개선의 과학”을 상징하는 인물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