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아랍의 과학자 알이드리시는 지도를 ‘그림’이 아니라 좌표·거리·경로의 규칙으로 다뤘습니다. 지식이 표준화되는 정확성의 원리를 정리합니다. 오래전 지도를 보면 정확한 측량 보다는 그림에 가까웠었죠 알이드리시가 그린 지도는 그림이 아니라 측량으로 같은 모양을 가진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지도에 가까웠습니다. 그리드 라는 개념이 도입된 그떄의 지도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지도는 “멋있게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틀리지 않게 맞추는 규칙”이다
지도를 떠올리면 먼저 시각적 요소가 떠오릅니다. 산맥이 굽이치고, 바다가 파랗게 칠해지고, 도시 이름이 촘촘히 적힌 이미지 말이죠.
하지만 지도는 결국 길을 찾고, 거리를 비교하고, 세계를 ‘같은 기준’으로 이해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지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미술이 아니라 정확성의 규칙입니다.
- 어디를 기준점으로 삼는가?
- 거리는 무엇으로 잰다고 합의하는가?
- 경로는 어떻게 표현하는가?
- 지역 이름은 어떤 표준으로 적는가?
- 서로 다른 정보를 어떻게 대조하고 교정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지도는 “예쁜 그림”이지만, 답을 갖추면 지도는 **지식 표준(standard)**이 됩니다.
이 글에서는 중세 아랍의 과학자 알이드리시(al-Idrisi)가 지도 제작을 통해 보여준 “정확성의 규칙”을, 오늘날 기준으로도 이해하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알이드리시 대략 연대기 (출생·사망, 주요 업적 연도)
중세 인물은 문헌에 따라 표기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 “대략”으로 정리합니다.
- 출생: 1100년경(북아프리카 지역 출생으로 알려짐)
- 활동 무대: 12세기 중반, 시칠리아(팔레르모)에서 지리·지도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널리 소개됨
- 대표 성과(핵심 연도): 1154년경, ‘로저의 책’으로 불리는 지리서와 지도(흔히 Tabula Rogeriana로 알려짐)가 큰 전환점으로 언급됨
- 사망: 1165~1166년경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음
연대기에서 중요한 건 “정확한 날짜”보다 흐름입니다.
알이드리시는 서로 다른 지역의 정보(여행기, 상인·항해자·관리의 구술, 기존 지리 지식)를 한 장의 지도 체계로 묶어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정확성 규칙”을 만들어낸 사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알이드리시를 이해하는 핵심: 지도는 ‘정보의 합’이 아니라 ‘규칙의 합’
지도는 정보를 많이 모으면 좋아질까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 정보가 많아도 기준이 다르면 서로 충돌합니다.
- 기준이 없으면 검증할 수 없고, 틀린 정보가 섞여도 티가 안 납니다.
- 기준이 없으면 업데이트도 어렵고, 다음 제작자가 이어받을 수 없습니다.
알이드리시의 지도 제작이 “대표 사례”로 불리는 이유는, 지도를 단지 모아 그린 것이 아니라 지도를 작동하게 만드는 규칙을 세웠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 제작에서 말하는 ‘정확성’은 무엇인가
정확성은 단순히 “실제와 똑같다”가 아닙니다. 지도에서의 정확성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위치 정확성
- 어떤 도시가 어느 도시의 동쪽/서쪽인지
- 위/아래(북/남) 방향이 일관되는지
- 같은 도시가 지도마다 다른 곳에 찍히지 않는지
2) 거리 정확성
- A에서 B까지의 대략적인 길이가 지도에서 비교 가능한지
- “가까움/멀음”이 체감과 비슷하게 맞는지
- 경로 기반 거리(이동 시간)와 직선 거리(공간 거리)를 구분하는지
3) 연결 정확성(경로/네트워크)
- 길이 이어지는 방식이 납득되는지
- 항로·교역로·산맥·강이 “이동 가능/불가능”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 지형이 이동을 어떻게 바꾸는지 드러나는지
알이드리시는 이 3가지 정확성을 ‘그림 솜씨’가 아니라 규칙으로 관리하려 했다고 보는 쪽이 이해가 빠릅니다.
정확성의 규칙 1: “기준점” 없이 지도는 시작할 수 없다
지도는 좌표가 없어도 그릴 수 있지만, 그 경우 지도는 금방 흔들립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기준점(Anchor)**입니다.
- 중심 도시(정치·경제 중심)
- 항구(해상 네트워크의 기준점)
- 큰 강 하구, 유명 산맥(자연 지형 기준점)
- 주요 교역 거점(이동 기준점)
기준점이 생기면, 나머지 정보는 기준점에 상대적으로 배치됩니다.
이게 지도 제작의 현실입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절대 좌표로 박는다”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중심을 놓고 주변을 정렬하는 방식이죠.
정확성의 규칙 2: 거리의 단위를 “합의”해야 한다
지도에서 가장 자주 깨지는 게 거리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거리란 말이 하나지만 실제로는 두 종류가 섞이기 때문입니다.
- 공간 거리: 실제 공간의 길이(직선/곡선)
- 이동 거리: 이동에 걸리는 시간, 경로의 난이도, 계절 영향이 반영된 체감 거리
중세 지도 제작 환경에서는 이동 거리 정보가 훨씬 풍부했습니다. 상인이나 여행자는 “얼마나 걸리느냐”를 말하니까요.
하지만 이동 거리를 그대로 그리면, 지형과 계절에 따라 흔들립니다.
그래서 알이드리시 같은 지도 제작자는 결국 어떤 방식으로든 거리의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 직선 거리와 이동 거리를 구분해서 다룬다
- 이동 거리라면 “평균적인 조건”을 가정한다
-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면, 비교 가능한 방식으로 환산한다
지도는 단위를 정하는 순간부터 비로소 “비교 도구”가 됩니다.
정확성의 규칙 3: 방향(방위)의 일관성이 지도를 살린다
지도 초보가 가장 먼저 헷갈리는 건 “위가 어디냐”입니다.
오늘날은 북쪽이 위인 지도가 익숙하지만, 역사적으로는 기준이 다양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건 “북쪽이 위냐 아래냐” 같은 취향이 아니라, 한 지도 안에서 방향 규칙이 일관되냐입니다.
- 동쪽이라고 적힌 곳이 계속 동쪽으로 이어지는가
- 강이 흐르는 방향이 주변 지형과 충돌하지 않는가
- 해안선이 전체적으로 납득되는 방향을 유지하는가
방향 규칙이 일관되면, 일부 지역 정보가 부정확해도 전체 지도는 “길 찾기”에 도움이 됩니다.
반대로 방향이 흔들리면, 지도는 아무리 화려해도 신뢰를 잃습니다.
정확성의 규칙 4: 경로는 ‘선’이 아니라 ‘약속’이다
지도에서 길은 선으로 그리지만, 길의 의미는 선이 아닙니다.
길은 다음 정보를 포함하는 약속입니다.
- 연결성: A에서 B로 갈 수 있는가
- 난이도: 산, 사막, 강, 바람이 이동에 어떤 제약을 주는가
- 노드: 중간 기착지(물, 식량, 항구, 시장)가 어디인가
- 안정성: 계절에 따라 열리는 길/닫히는 길이 있는가
알이드리시의 지도 제작을 “경로의 규칙”으로 보는 이유는 여기 있습니다.
지도는 지형을 예쁘게 그리는 게 아니라, 이동 네트워크를 안정적으로 표현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정확성의 규칙 5: 이름(지명)의 표준화가 없으면 지도는 데이터가 아니다
지명 표기가 제멋대로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 같은 도시가 다른 이름으로 중복 기록됨
- 다른 도시가 같은 이름으로 혼동됨
- 언어권이 바뀔 때 정보가 끊김
- 후대 편집·복사 과정에서 오류가 폭발함
그래서 지도 제작에서 지명은 단순한 라벨이 아니라 **식별자(ID)**에 가깝습니다.
알이드리시의 작업을 지식 표준화의 대표 사례로 보는 관점에서는, 지명과 설명을 체계적으로 묶어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규칙”을 만들려 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정확성의 규칙 6: 수집 정보는 반드시 “교차검증”을 거쳐야 한다
지도 제작은 정보 수집이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어려움은 충돌하는 정보를 처리하는 일입니다.
- 어떤 상인은 “이 도시가 더 가깝다”고 말하고
- 어떤 항해자는 “바닷길이 더 길다”고 말하고
- 어떤 기록은 오래되어 길이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지도 제작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교차검증입니다.
- 같은 구간을 여러 출처로 대조한다
- 가장 신뢰도가 높은 출처를 기준으로 삼는다
- 서로 다른 정보는 주석/설명으로 층위를 둔다
- 너무 불확실하면 과감히 “확정처럼” 그리지 않는다
이 교차검증이 들어가는 순간, 지도는 “전언 모음”에서 “지식 체계”로 넘어갑니다.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이 강했던 지점은 바로 이런 검증 감각에서 나옵니다.
알이드리시식 지도 제작 프로세스: ‘그림’ 이전에 ‘편집’이 있다
알이드리시의 지도 작업을 현대식으로 번역하면, 사실 지도는 “디자인”보다 “편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1) 입력 수집
- 여행 기록, 항해 정보, 상인 네트워크의 지식
- 기존 지리서/지도에 축적된 표준 표현
2) 정보 정규화
- 지명 표기 통일
- 거리·시간 표현을 비교 가능하게 변환
- 방향·경로 표현을 공통 규칙에 맞춤
3) 충돌 해결
- 출처가 다른 값들을 대조
- 신뢰도 기준을 세워 우선순위 결정
- 불확실성은 표현 방식(설명/범위)으로 흡수
4) 구조화(그리드/구획화 발상)
지도를 한 번에 그리면 전체 균형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큰 지도를 일정한 기준으로 나눠 관리하면 정확성이 올라갑니다. “세계를 구획으로 나눠 정리한다”는 발상은 지도 제작에서 아주 강력한 품질 관리 방식입니다.
5) 제작(시각화)
마지막에야 그림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그림은 ‘감’이 아니라 앞 단계의 규칙이 시각화된 결과물입니다.
알이드리시의 작업이 “지식 표준화”의 대표 사례로 읽히는 이유
알이드리시의 지도 제작은 단순히 “잘 그린 지도”가 아니라, 지도 제작이 요구하는 표준의 조건을 보여줍니다.
- 재현 가능성: 같은 규칙이면 후대도 확장 가능
- 비교 가능성: 지역 간 거리·위치를 비교할 수 있음
- 축적 가능성: 업데이트가 가능하고, 누적될 수 있음
- 협업 가능성: 여러 출처·여러 사람의 정보를 한 시스템에 통합 가능
이 네 가지가 갖춰지면 지도는 예술품이 아니라 지식 인프라가 됩니다.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 GPS 시대에도 ‘규칙’이 먼저다
요즘은 위성으로 위치를 찍고, 스마트폰이 알아서 경로를 안내합니다. 그래서 “옛 지도는 필요 없다”고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실제로 현대 지도도 여전히 알이드리시의 문제를 반복합니다.
- 좌표는 정확해도, 도로 정보가 틀리면 길을 못 찾음
- 데이터는 많아도, 표준화가 안 되면 합칠 수 없음
- 업데이트가 느리면, 현실과 괴리가 생김
- 신뢰도 낮은 데이터가 섞이면, 검증 비용이 폭증함
결국 지도는 “센서”가 아니라 규칙과 검증 체계가 품질을 결정합니다.
이 점에서 알이드리시를 읽는 가치는 여전히 큽니다.
자주 오해하는 포인트 3가지
오해 1) “지도는 결국 예쁘면 된다”
예쁨은 접근성을 높이지만, 지도 본질은 정확성 규칙입니다. 규칙이 없으면 예쁜 지도도 길을 안내하지 못합니다.
오해 2) “좌표만 정확하면 지도는 완성이다”
좌표는 시작일 뿐입니다. 길, 연결, 표준 용어, 업데이트, 검증 체계가 없으면 지도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오해 3) “중세 지도는 부정확해서 의미가 적다”
중요한 건 절대 정밀도가 아니라, 지식 표준화로 가는 방향입니다. 알이드리시의 의미는 지도를 ‘규칙의 산물’로 만들려는 시도에서 나옵니다.
지도는 ‘그림’이 아니라 ‘규칙으로 세계를 고정하는 기술’이다
알이드리시를 통해 보게 되는 결론은 단순합니다.
- 세계를 설명하려면 정보가 아니라 규칙이 필요하다
- 지도를 만들려면 그림이 아니라 기준점·단위·방향·경로·용어·검증이 필요하다
- 그 규칙이 갖춰질 때, 지도는 지식 표준이 된다
그래서 중세 아랍의 과학자 알이드리시는 “지도를 잘 그린 사람”이 아니라, 지식이 표준화되는 조건을 지도 제작으로 보여준 사람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 알비루니: 실험역학과 ‘측정 집착’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