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아랍의 과학자들 이븐 사흘: 굴절 연구가 렌즈 기술을 키운 과정

중세 아랍의 과학자 이븐 사흘의 굴절 연구는 ‘공식 암기’가 아니라 문제를 정의하고, 기하로 풀고, 렌즈 형태로 검증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광학이 강했던 이유를 흐름으로 정리합니다. 이븐 사흘의 연구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쓰고있는 안경이나 콘택트 렌즈의 기원이 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그 시대의 연구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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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굴절은 “빛이 꺾인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빛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꺾입니다. 이 현상을 우리는 굴절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빛이 꺾인다”는 말은 관찰에 불과합니다. 기술이 되려면 한 단계가 더 필요합니다.

  • 얼마나 꺾이는가?
  • 어떤 재료에서는 더 꺾이고, 어떤 재료에서는 덜 꺾이는가?
  • 그 ‘꺾임’을 이용해 빛을 원하는 점으로 모을 수 있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세 아랍의 과학자 이븐 사흘(Abū Saʿd al-ʿAlāʾ ibn Sahl)이 등장합니다. 그는 굴절을 “현상 설명”에서 “설계 가능한 규칙”으로 끌어올렸고, 그 결과가 렌즈 기술로 이어질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이븐 사흘 대략 연대기 (활동 시기 중심)

당시 인물들은 생몰 기록이 완전히 확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아 “대략/활동 시기”로 정리합니다.

  • 대략 활동 시기: 10세기 후반(“late 10th century”)
  • 대표 저술(핵심 연도): 984년 『On Burning Mirrors and Lenses(연소경·렌즈에 관하여)』에서 굴절과 렌즈/거울 설계를 기하적으로 전개
  • 후대 연결: 이븐 알하이탐(알하젠)의 작업 시기(10~11세기)와 맞물리며, 이븐 사흘이 언급·참조되는 흐름이 보임

굴절 연구가 “렌즈 기술”이 되려면 필요한 3가지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굴절을 연구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렌즈가 좋아지진 않습니다. 연구가 기술로 전환되려면 최소 3가지를 갖춰야 합니다.

  1. 문제 정의: “빛을 어디에 모을 것인가(초점)?”를 명확히 한다
  2. 수학/기하 모델: 꺾임을 계산 가능한 규칙으로 만든다
  3. 형태 설계: 규칙을 이용해 “그 규칙에 맞는 렌즈 곡면”을 그린다

이븐 사흘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3가지를 한 번에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는 굴절을 통해 “태우는(집광) 장치”를 설계하는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이븐 사흘의 출발점: “연소경(집광) 문제”는 기술 수요였다

『On Burning Mirrors and Lenses』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그의 관심은 “빛의 성질 일반론”만이 아닙니다. 빛을 모아 강한 에너지를 만들고, 그 에너지를 원하는 위치에 정확히 도달시키는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여기서 ‘렌즈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정밀한 목표 달성 수단이 됩니다.

  • 멀리 있는 지점을 태울 만큼 강하게 모으기
  • 초점을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기
  • 곡면을 어떻게 깎아야 “원하는 성능”이 나오는지 설명하기

즉, 굴절 연구는 “현상 이해”가 아니라 **성능 요구(요구사항)**와 만났을 때 기술로 성장합니다.


핵심 1: 이븐 사흘이 정리한 굴절의 규칙

오늘날 굴절의 대표 규칙은 흔히 ‘스넬의 법칙’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984년 이븐 사흘이 먼저 그 관계를 정리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중요한 건 “누가 먼저였나”의 경쟁이 아니라, 그가 어떤 방식으로 규칙을 만들었느냐입니다.

기하로 만든 규칙: “비율”로 굴절을 다루다

이븐 사흘은 굴절을 단순한 표처럼 다루기보다, 기하학적 구성으로 다룹니다. 즉, 빛이 매질 경계에서 꺾이는 각도를 일관된 비율 관계로 놓고, 그 비율이 유지될 때 어떤 곡면이 초점을 만들 수 있는지 추적합니다.

이 접근은 기술적으로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 표(데이터)만 있으면 “그때그때 맞춰보기”가 되기 쉽지만
  • 비율 규칙을 확보하면 “형태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핵심 2: ‘수식’이 아니라 ‘문제 해결 과정’으로 보는 이븐 사흘

많은 사람들이 광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공식을 먼저 보기 때문입니다. 이븐 사흘을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바꾸면 흐름은 이렇습니다.

1) 목표를 먼저 잡는다: “한 점으로 모아라”

렌즈의 목적은 대체로 집광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빛이 어떻게 꺾이느냐”가 아니라,

“어떤 곡면이면 들어오는 빛이 모두 같은 점으로 모이게 되는가?”

가 됩니다.

2) 굴절 규칙을 ‘설계 도구’로 바꾼다

굴절 법칙이 있다면, 특정 각도로 들어온 빛이 어떤 각도로 나갈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다음 단계는 자동입니다.

  • “이 점으로 모이게 하려면 출사광이 이 방향이어야 한다”
  • “그 방향이 되려면 입사각과 굴절각은 이 관계를 만족해야 한다”
  • “그 관계가 성립하도록 곡면을 구성하면 된다”

이게 바로 연구가 기술이 되는 순간입니다.

3) 결과가 ‘렌즈 형태’로 귀결된다

이븐 사흘의 강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굴절 문제를 풀고 나서, 결론을 “말”로만 남기지 않고 곡선/곡면 형태로 귀결시킵니다. 즉 “이론의 출력값이 렌즈 디자인”입니다.


핵심 3: ‘비구면(Aspheric)’ 발상과 수차 문제

렌즈가 단순히 볼록하면 빛이 모일까요? 어느 정도는 모입니다.
하지만 정밀한 집광에서는 문제가 생깁니다. 주변부로 들어온 빛과 중심부로 들어온 빛이 **같은 점에 정확히 모이지 않는 현상(수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븐 사흘의 연구는 바로 이 문제—“완벽하게 한 점으로 모으려면 어떤 곡선이 필요한가”—와 맞닿아 소개됩니다.

정리하면:

  • 단순한 원호/구면은 만들기 쉽지만 성능 한계가 있고
  • 목표 성능을 만족하려면 곡면이 더 정교해져야 합니다(비구면적 사고)

이 관점은 오늘날 카메라 렌즈, 현미경 렌즈, 안경 렌즈에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좋은 렌즈”는 결국 “좋은 곡면 설계”에서 시작합니다.


왜 하필 10세기 바그다드에서 이런 연구가 가능했을까

이븐 사흘은 후대 전기 자료가 풍부한 편은 아니라는 언급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구가 가능했던 배경을 “조건”으로 풀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1) 수학(기하) 전통이 강했다

굴절을 렌즈로 연결하려면, 관찰보다 기하학적 구성 능력이 더 중요해집니다. 이븐 사흘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듭니다.

2) 기술적 수요가 있었다(집광, 정밀 관측)

‘태우는 거울/렌즈’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정밀한 빛 제어 장치로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3) 후대 연구와 연결되는 “축적”이 있었다

이븐 사흘의 굴절 법칙은 후대에 ‘스넬의 법칙’으로 불리며 재발견·재정리되는 흐름 속에서, 선행 정리로 언급됩니다.
그리고 이븐 알하이탐의 『광학서』가 굴절 법칙에 “가까이 갔지만 그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정리도 함께 소개됩니다.

즉,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의 광학은 “한 명의 천재”만으로가 아니라, 전후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는 “문제-방법-설계”의 연결 고리가 있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습니다.


굴절 연구가 렌즈 기술을 키운 ‘실전 메커니즘’

이제 결론을 더 실무적으로 정리해볼게요. “굴절 연구 → 렌즈 기술”로 이어지는 다리(메커니즘)는 크게 4단계입니다.

1) 굴절을 ‘법칙’으로 고정한다

경험치(대충 이 정도)에서 끝내면 설계가 불가능합니다.
이븐 사흘은 굴절을 일관된 관계로 묶어 설계 가능한 상태로 만듭니다.

2) “원하는 광선 경로”를 먼저 그린다

초점 위치가 목표라면, 광선의 출사 방향은 사실상 정해집니다.
여기서부터 기하학은 ‘계산기’가 아니라 ‘설계기’가 됩니다.

3) 그 경로가 나오도록 곡면을 역산한다

렌즈 제작의 본질은 “곡면을 만드는 것”입니다.
굴절 관계가 확보되면, 곡면은 감이 아니라 역산의 결과가 됩니다.

4) 제작·검증·개선을 반복할 수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한 번 만들었다”가 아니라
다시 만들고, 다른 재료로 바꾸고, 초점을 더 날카롭게 만드는 반복이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반복 가능성이 ‘기술’의 조건입니다.


오늘의 예시로 비유하면: 이븐 사흘은 “렌즈 설계자”였다

이 글을 읽는 입장에서 가장 이해가 빠른 비유는 이겁니다.

  • 단순한 유리 조각을 깎는 장인: “경험의 축적”
  • 굴절 규칙을 가지고 초점 성능을 목표로 곡면을 설계하는 사람: “설계 기반 엔지니어”

이븐 사흘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는 빛을 관찰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굴절을 이용해 목표 성능을 만족하는 형태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전개합니다.


자주 오해하는 포인트 3가지

오해 1) “굴절 법칙만 알면 렌즈가 다 좋아진다?”

아닙니다. 법칙은 출발점이고, 렌즈 품질은 형태 설계와 제작 정밀도가 좌우합니다.
이븐 사흘의 의미는 법칙을 “설계”로 연결했다는 데 있습니다.

오해 2) “광학은 이론이고 공학은 따로다?”

이븐 사흘의 작업은 이론이 곧 공학으로 이어지는 전형입니다.
문제 정의 → 기하 모델 → 곡면 설계가 한 묶음으로 움직입니다.

오해 3) “후대에 더 유명한 사람이 있으니 그 이전은 의미가 적다?”

후대의 체계화가 더 널리 알려졌더라도, 선행 연구가 만든 연결 고리가 없으면 체계화도 어렵습니다. 굴절 관계를 984년에 정리한 흐름은 그 고리로 자주 언급됩니다.


‘굴절’이 ‘렌즈’가 되는 순간을 만든 사람

이븐 사흘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굴절을 “설명”이 아니라 “설계”로 바꾼 사람.

그는 굴절을 기하학으로 붙잡고, 그 규칙을 렌즈·거울의 형태로 연결했으며, 집광이라는 기술적 목표를 통해 연구가 실전으로 들어오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중세 아랍의 과학자들의 광학이 강했던 이유도 선명해집니다. 정답(공식)보다 문제 해결의 흐름을 중시했고, 그 흐름의 끝이 실제 도구(렌즈)로 귀결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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